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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田徳明雅樂研究會

Mita Noriaki Gagaku Academy

일본 아악과 한국의 관계

「아악(雅樂)」이란 일반적으로 「속악(俗樂)」에 대칭되는 <정통한 의례음악>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한자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되는 용어이다. 아시아 각국의 아악은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중국문화의 영향 아래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일본 문헌 상에 아악이 처음 기록된 것은 8세기에 편찬된 일본 최고(最古)의 신화 ․

역사서인 『고지키(古事記:고사기)』와 『니혼쇼키(日本書紀:일본서기)』의 기사로,

아마노이와토(天の岩戸)의 예능의 여신․아메노우즈메(アメノウズメ)의 가구라(神樂)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같은 책 의 제14대․주아이(仲哀)천황 급사 사건의 기록에서는 천황이

신탁(神託)을 청하기 위해 거문고 를 연주하였다고 한다. 이 거문고는 각지의 고분에서

발굴되고 있는 「거문고를 타는 토용」(오른쪽)이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와곤

(和琴, 일본 고유의 6현금)의 원형이라 생각된 다. 이것은 『수서(隋書)』(636)왜국전의

「악(樂)에는 5현의 거문고、피리가 있다」라는 기록 과도 부합된다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기록을 통해 당시 일본의 각종 의식에 사용되었던 음악과 춤의 양상을 살필 수 있다.

한편,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창구로 한 고대의 국제교류 속에서 일본은 아시아 여 러 나라의 음악과 무용문화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일본의 토착 음악과 춤 은 아시아 제국의 악무와 융합해 일본의 아악으로 집대성하게 된다.

A. 일본 아악의 범주1

일본 아악을 악곡이 생겨난 배경에 따라 세 부류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Ⅰ.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도(神道), 황실의례(儀禮) 계통의 가무예)

가구라우타(神樂歌, 닌죠마이(人長舞)), 아즈마아소비(東遊), 야마토우타(大和歌, 야마토마이(大和舞)), 구메우타(久米歌, 구메마이(久米舞)), 오우타(大歌, 고세치노마이(五節の舞)), 루이카(誄歌) 등.
이상의 것들은 「고쿠후우카부/구니부리노우타마이(國風歌舞:국풍의 가무)」라 불리며 일본의 토착신앙이라 할 수 있는 「신도」의 의례 속에서 발생, 전례 된 악곡들로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게 된다.

 

Ⅱ. 5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한반도 및 중국 대륙에서 유입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악무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새롭게 만든 악무)

 

Ⅲ.헤이안기(平安期, 794~1191)의 신작 가요
  로에(朗詠)- 한시(漢詩)에 선율을 붙이고 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함
  사이바라(催馬樂)-일본어 가사에 선율을 붙이고 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함.

 

 이상의 것들 중, 일본인이 일반적으로 「가장 아악답다」고 느끼는 것은 Ⅱ의 외래 악무이다.

그리고 많은 일본인은 그것을 「순수 일본의 음악과 춤」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 외래악 중에는 일본의 풍토에 완전히 용해되어 가장 일본적이라고 여겨지는 신도의식에서 많이 사용될 뿐 아니라 지방으로까지 전해져 민요로 성립된 악곡조차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한반도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A-Ⅱ의 외래 악무를 중심으로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겠다.

 

B. 외래 악무의 수용과 전승
 일본은 해외로부터 악무를 받아들일 때, 중국의 의례음악으로서의 「아악」이 아닌 「연향악(宴饗樂)」, 다시 말해 당시의 「속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것들의 유입을 주도한것은 인도인, 베트남인의 승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승려와 악인(樂人), 그리고 일본에서 중국 등지로 유학을 간 악인들이었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악곡이 일본에 유입된 당초는 아시아 각지의 지방색이 풍부한 음악과 춤을 각각 전문적으로 연주하고 공연하던 악인이 중앙에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다이호료 (大宝令, 701:대보령)에 의해 치부쇼(治部省:치부성) 아래에 「우타료/우타마이노쓰카사 (雅樂寮:아악료)」를 설치하게 되는데 요로료(養老令, 757:양로령)의 규정에서는 그 인원을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아악료의 정원】 

  우타노시(歌師:가창사) 4인, 우타비토(歌人:가창인) 30인, 우타메(歌女:가창녀) 100인
  마이노시(舞師:무용시) 4인, 마이쇼(舞生:무용생) 100인
  후에노시(笛師) 2인, 후에쇼(笛生) 6인, 피리공(笛工) 8인
  도우가쿠노시(唐樂師:당악사) 12인, 가쿠쇼(樂生:악생) 60인
  고마가쿠노시(高麗樂師:고려악사) 4인, 가쿠쇼 20인
  구다라가쿠노시(百済樂師:백제악사) 4인, 가쿠쇼 20인  
  시라기가쿠노시(新羅樂師:신라악사) 4인, 가쿠쇼 20인
  기노가쿠시(伎樂師:쿠레악사) 1인, 구레쓰즈미노시(腰鼓師) 2인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일본인이든 도래인(渡来人)이든상관이 없었지만 한반도계의 그것은 도래인만이 관계하도록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당악을 담당할 중국계 도래인과 비교해, 고구려, 백제, 신라악을 담당할 한반도계 도래인이 당시 일본에 많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한반도계 악무는 일본인이 관여하지 않더라도 현지 출신의 연주가들에 의해, 그 인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음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정원은 단계적으로감축되어 간다.

C. 악제 개혁과 좌우 양부제
 헤이안 시대가 되면 아악 담당자는 「우타료/우타마이노쓰카사(雅樂寮:아악료)」에서 근위부의 관인(官人) 이나 전상인 (殿上人:상급 귀족)으로 옮겨가게 된다.
 더욱이 헤이안 시대 중기에는 대규모의 악제개혁(樂制改革)이 이루어져 외래계 악무는 크게 둘로나뉘어진다.첫째, 중국을 통해 유입된 중국, 베트남, 인도, 이란고원에 기원을 둔 남방계이다. 그것을 일본에서는 토가쿠(唐樂:당악)이라고 불렀다. 둘째, 한반도를 통해 유입된 북방계의 고구리가쿠(高句麗樂:고구려악), 구다라가쿠(百済樂:백제악), 시라기가쿠(新羅樂:신라악), 봇카이가쿠(渤海樂:발해악)이다. 이것들을 총칭해 고마가쿠(高麗樂:고려악)이라 불렀다.
 그리고 「좌우양부제(左右両部制)」를 바탕으로, 전자를 좌악(左樂)/좌무(左舞), 후자를 우악(右樂)/우무(右舞)로 분류하게 되는데, 그 형태가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외에 좌우에 모두 포함되는「바토(抜頭)」「겐조라쿠(還城樂)」나 원래는 당악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고려악의 우무로 분류되는 것들 또한 있다. 아시아 각지에서 전래된 좌무, 우무의 형식을 차용해 일본에서 새롭게 만든 작품도 있다.

「바토(抜頭)」(왼쪽)

「겐조라쿠(還城楽)」(오른쪽)

 그리고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좌무는 원칙적으로서 적색 계통의 의상을 입고(사진1․2․3), 우무는 원칙적으로 청색 계통의 의상을 (사진4․5)입고 상연하게 된다.  덧붙여 아악 연주가는 1)악기 연주, 2) 춤 공연, 3) 가요 곡의 가창 이라고 하는 아악의 모든 요소를 총망라한 기량을 습득해야만 한다.

1 좌무:도가쿠 「만자이라쿠(万歳楽)」

3 좌무:린유가쿠 「가료빈(迦陵頻)」

 2 좌무:도가쿠「란료오(蘭陵王)」

 4 우무:고마가쿠「나소리(納曾利)」

 5 우무:고마가쿠「호힝(白浜)」

 즉, 상기 (1)의 아악연주에 관해 말하자면, 세 종류의 관악기〔쇼(笙)․히치리키(篳篥)․ 요코부에(横笛)(=류테키(龍笛)/고마부에(高麗笛)/가구라부에(神樂笛)〕 중에서 하나, 그리고 네 종류의 타악기(캇고(鞨鼓)․산노쓰즈미(三ノ鼓)․다이코(太鼓)․쇼코(鉦鼓)) 모두, 두 종류 현악기(비와(琵琶)․소(筝)) 중에서 하나, 와곤은 전원이 필수로 하였다.이하 악제 개혁 후, 외래 악무에 사용된 악기를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2> ※오늘날에는현악기를사용하지않음

<표3>※ 메이지(明治, 1868~)이후로는 현악기를 사용하지않음
※ 우무라 하더라도 당악에서 유래한 경우는
당악의 편성에 따름

D. 좌무․우무의 특징
 현재, 공연에 있어 아악 연주자는 좌무․우무 중 하나를 필수로 해야만 한다. 춤의 교습과 전승에 있어, 좌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이유에 대해서는 좌우의 코노에후(近衛府:황제의 친위대)가 각각 춤을 담당했던 것이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은 전승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야 말로, 좌무와 우무의 고유하고 특징적인 춤의 형태를 무너뜨리 지 않고 지켜나가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즉 좌무 당악과 우무 고려악은 기본동작이 다르기 때문에(표3 참조) 그 좌우 악무의 특징적인 동 작의 혼동을 피한다는 점에서 이 전승 방법은 상당히 의미 있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한다.

<표4> 좌무․우무의 차이점

 또한 (표4)에 나타난 반주 음악과의 관계 및 교습법에 있어서의 우무와 좌무의 특징은 그대로 오늘날의 한ㆍ중 전통 무용의 특징과도 일치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즉, 중국의 전통 무용은 주로 멜로디에 맞추어 교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도자는 선율을 입으로 낭창하며 학생을 지도 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전통 무용은 타악기의 리듬을 중심으로, 리듬을 카운트 하면서 거기에 맞추어 춤동작을 익히도록 지도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무용은 선율보다는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중 양국의 전통무용을 일본 아악의 무악에 비추어 생각해 보면 본래부터 한반도적인 것, 중국적인 것의 특징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 아악은 한중 양국의 비교 무용 연구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 일본 아악 속의 한반도적 요소
 다음으로 일본 아악 중, A-Ⅱ의 외래악무 중에서 한반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고 생각되는 몇몇 사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Ⅰ. 우무․고려악 계통에 보이는 한반도적 요소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분야에는 한반도적 요소가 산재해 있다. 이하에서 그 몇몇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코가 비뚫어진 「고토쿠라쿠(胡徳樂)」의 가면
 한국어에서 「코가 비뚫어 졌다」고 하는 것은 만취한 상태를 의미하지만, 일본어에서는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무중 「고토쿠라쿠」의 가면 은 상기의 한국어 표현을 단적 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악무는 주인이 4인의 손님에게 술을 대접하는 모습을 무언극 풍으로 꾸민 것이다. 곡중에 술을 대접하며 다니는 것은 「헤이시모치(瓶子持)」라고 불리는 하인이다. 술이 돌고 흥이 오르자 손님들은 순서대로 춤을 추게 되는데, 그 틈을 타 헤이시모치는 자신이 들고 있는 술병의 술을 몰래 마신다. 마침내 주량을 이기지 못해 똑바로 일어설 수도 없게 된 헤 이시모치의 골계스러운 움직임을 모두가 즐긴다고 하는 무악에서는 보기 드문 「웃음」을 전면에 내세운 곡이다.
 이 악곡에서 사용하는 가면 중, 두번째 출연자(二﨟), 세번째 출연자(三﨟) 및 네번째 출 연자(四﨟)가 사용하는 가면은 코부분이 좌우로 비똟어져 있고, 악무 중에도 술에 취한 모 습을 표현 할 때 공연자가 코를 옆으로 비뚫어지게 하며 술잔을 비우는 인상적인 동작이 있다.

 이 춤은 원래 좌무였던 것을 헤이안 시대에 우무로 개편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전통적인 일본어에는 없는, 술과 관련된 「한국어 특유의 표현」을 형상화 한 가면이 본 악곡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본 악곡의 존재는 그 자체로서 당시 일본문화 속에서 한반도 문화가 얼마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살아있 는 자료가 되고 있다.

고토쿠라쿠(胡徳楽)면

2) 「나소리(納曾利)」의 은색 봉의 정체 우무의 대표곡인 「나소리」는 일명 「소류노마이(双龍舞)」라고도 하는데, 두 마리의 청룡이 즐겁게 노니는 모습을 춤으로 표현한 한반도 계통의 악무이다. 본 악곡은 오른 손에 은색의 금속성 봉을 들고 춤을 춘다.일본에서는 이 봉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서정록씨는 조선통신사 관련 자료와 『왜명류취초(倭名類聚抄)(백과사전, 10세기) 』등의 고사서 검토를 통해 나소리의 봉이 원래는 「고마부에(高麗笛)」이었음을 분 명히 하였다.

나소리(納曾利)

그 외, 백제의 「왕인」박사와 관련된 「오닌테이(皇仁庭)」, 백제의 주조신 「수수코리(須須許理)」와 관련된「소리코(蘇利古)」, 신라의 「소시모리(蘇志茂利)」산과 관련된 「소시마리(蘇志麻利)」, 말갈국에서 유입된 「신마카(新靺鞨)」를 비롯해 한반도를 통해 들어온 악곡의 수는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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